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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를 벤치마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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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헌철 작성일11-02-18 17:43 조회7,6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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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를 벤치마킹하자! 여기저기서 가슴을 치는 굉음들이 들려온다. 그곳에는 어김없이 돈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이 인간을 지배하는 관계서인지 교회 지도자들 간에도 돈으로 인한 파열음이 들려오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미국에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념하여 증권시장도 쉬었다는데? 우리는 “주님의 날”에도 손과 발이 날라 다닌다니? 네델란드의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는 그 만년에 있어서 행색이 너무도 초라하고 굶기를 밥먹듯하고 다녔다. 그것을 본 그의 제자가 하도 딱해서 돈을 주며, “선생님, 이 돈으로 의복이나 한 벌 해 입으시고 맛있는 음식이나 잡수십시오.”했다. 그 돈을 받은 렘브란트는 제자의 말 대로 의복을 맞추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 먹는 대신, 머리에 떠오르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물감을 사가지고 자기 아틀리에로 돌아왔다. 이 화가에게는 입고 먹는 것보다 물감이 필요했고, 물감을 손에 넣음으로써 그는 행복했던 것이다. 그는 거대한 재력으로 훌륭한 집을 짓는 것보다 더 숭고한 모양을 가진 그림을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나타낼 수 있는 위대한 재산을 마음속에 지닌 행복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행복이란 그 생명과 같이 자신과 더불어 밀착한 것이라야 한다. 우리가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그의 육체 속에 행복의 샘을 가진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모래 위에 씨앗을 뿌리면 자라지 않듯,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 새버리듯, 자신의 육체 속에 행복을 받아들일 그릇이 없는 사람에게는 소용없는 일이다.[알랭 (출처 = 박규정 편, 명상으로의 여행 문조사 1990)] 그리스도인의 행복의 기준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생명의 가치관은 상실 되고 오직 돈에서 그 가치를 찾는다면 그 누가 행복할 수 있겠는가? 무엇이든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통하여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는 자기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곳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고,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본분에 만족함으로 누릴 때 그것이 곧 생명과 밀착 된 그리스도인의 재산 곧 행복의 샘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그런데 작금에는 예수님의 삶의 모습을 감당할 수 없기에 차라리 우리를 유혹하는 사탄에게 밀착되기를 원하는 데서 더 큰 파열음들이 들려오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밀착 되는 은혜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생명의 역동성을 누리도록 “렘브란트”의 화가로서의 열정을 벤치마킹 한다는 생각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신앙의 본분에 대하여 돌아봄이 어떨까?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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