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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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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헌철 작성일14-03-07 17:14 조회5,7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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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끝? “모두 일하러 가고, 나와 동생만 집에 남아 있었어요, 그때, 남자 두 명과 여자 한명이 담을 넘어 오더니 다짜고짜 우리를 붙잡았어요. 소리를 지르거나 저항할 겨를도 없었지요, 그들은 우리 입을 막은 다음 가까운 숲으로 끌고 갔어요, 그리고는 우리 손을 꽁꽁 묶었어요..... 내가 큰 소리로 울부짖자 그들은 내 입에 재갈을 물린 다음 더 단단히 묶어서 커다란 자루 속에다 집어넣었어요.....! 그 다음 날에는 정말로 끔찍한 슬픔을 겪었어야 했어요. 그들은 꽉 끌어안고 있는 동생과 나를 억지로 떼어 냈어요. 제발 우리를 헤어지게 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결국은 여동생을 내게서 떼어 낸 뒤, 다른 곳으로 데려가 버렸어요.....“ (출처 : 케네스C. 데이비스저, 이충호 옮김 미국사 이야기) ‘올라우다 에퀴아노’(1745~1797)는 11세 때 아프리카 고향 마을에서 노예상인에게 납치됐다. 영국 해군 장교의 노예로 팔려간 그는 선원으로 일하면서 영어를 깨쳤다. 틈틈이 돈을 벌어 두 번째 소유주로부터 자유를 산 그는 노예 제도의 참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1789년에 노예문학의 선구적 작품으로 꼽히는 자서전을 펴냈다. 인간의 욕망은 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끊임없는 학대와 비인간적 대우 속에서 고통을 받아온 유색인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인간의 존엄성을 외치다가 죽음의 길을 가기도 하였다. 비단 이것이 미국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일제의 강압 속에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고통과 괴로움 속에 죽어가야만 했는가? ‘올리우다 에퀴아노’의 가족이 노예로 끌려가던 아픔만 못하단 말인가? 아니다 그보다 더한 학살과 학대와 고통 속에 살아온 우리가 아니었던가? 작금에 생체실험에 대한 추악하고도 악랄한 일제의 모습의 근거가 발견 되었다 하나 우리의 정부로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항의 수준이다. 왜 우리는 우리가 당했던 아픔의 역사에 굳이 침묵하려 했는가? 한 가닥 흘러내리는 햇볓을 쪼이려 속옷 바람으로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있던 아픔의 세월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최근 일제의 ‘아베’ 총리는 영토와 역사 문제로 갈등 중인 중국과의 충돌 가능성은 내비치는 발언으로,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독일의 상황에 빗대어 중국과 일본이 현재 상황과 유사하다고 말했다.”고 하니 만에 하나 그러한 이야기가 사실이 된다면 우리 해군은 동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때 미국은 동해를 우리 영해로 인정할까? 만에 하나 아니라면 독도는? 나아가 한반도는? 따라서 1894년 7월 25일부터 1895년 4월까지 벌어진 청일전쟁과 한반도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고, 끔찍하지 않은가? 국제 정세에 과연 인간의 존엄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혹시라도 힘이 존엄성이라고 말하는 논리가 엄존 하는 것은 아닌가? 따라서 기독교 지도자들은 물론 국가의 정책을 입안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살고 국민이 타국인들에게 억눌려 다시금 노예로 살아가지 않도록 하는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도자들이 눈앞에 보이는 자신들의 욕망에만 급급할 때엔, 그 끝은.....? 따라서 일제 뿐 아니라 힘을 앞세우는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도 우뚝 설수 있도록 대안인 오직 통일을 위해 힘을 다해 주기 바란다. 그래서 대통령도 “통일은 대박”이라 하지 않았을까? (18)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 하느니라 (19)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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